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적초인 점보트3 (문단 편집) == 제작 비화 == 소에이샤는 원래 토호쿠 신샤의 자회사로, 점보트3 이전에 제로 테스터, [[용자 라이딘]] 등을 제작했으나, 관련 수익은 토호쿠 신샤가 전부 가져가서 이를 두고 소에이샤 내에서 엄청난 불만이 쏟아졌다. 소에이샤는 당시 여아용 [[인형]] 리카짱으로 유명한 [[타카라]]에 독립 의사를 요청했지만, 타카라는 그 요청을 거절했고 대신 클로버란 업체를 소개시켜줬다. 클로버는 인지도 향상과 캐릭터 상품 유지 의도를 지녀 서로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고, 1977년 소에이샤는 일본 선라이즈로 개명해 토호쿠 신샤에서 독립하였다. 독립은 했지만 소에이샤의 주된 스탭은 대부분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토에이]]의 하청을 받아 [[초전자머신 볼테스V]]나 [[투장 다이모스]] 등을 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스탭을 마음껏 쓸 수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라이즈는 [[토미노 요시유키]]와 [[스즈키 요시타케]]를 중심으로 기획 및 원안을 내놓고, 다른 제작사에 하청을 줘서 점보트3를 만들어갔다. 원래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야스히코 요시카즈]]가 [[작화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안녕히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에 참여가 결정되어 못하게 되었고 야스히코는 토미노에게 "이번엔 야마토해서 못할 것 같다. 미안하다." 라고 이야기했지만 토미노는 "안 해도 돼 이 애니는 작화감독을 안 쓸 거야." 라고 하면서 명백하게 삐진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야스히코는 이에 대해서 이 애니는 작화만 좋으면 역사에 남을 대작이 될 수 있을 텐데하고 굉장히 아쉬워했다고 한다.[* 출처: 安彦良和対談集 アニメ・マンガ・戦争] 그래서 점보트3는 작화감독이란 개념이 사실상 없고[* 지금은 상상도 못하지만 옛날엔 작화감독이 없는 애니메이션도 꽤 된다. [[성전사 단바인]]도 작화감독이 없었다고 한다.] 매 에피소드의 작화가 같은 애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며 작화, 채색 오류들도 많다. 3화에서 케이코의 파일럿 [[슈트]]가 [[빨간색]]으로 입혀진 모습이 나온다거나, 조[[주연]]급 캐릭터들의 표정이 장면마다 각각 다르게 그려지는 연출과 반도크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어느새 [[기뢰]]로 바뀌어 있으며 점보에이스의 [[매그넘]]이 사라져 있다던지. 하여튼 작화는 알려진 것보단 좋은 편이 아니다. 점보트3는 시작부터 스토리와 컨셉으로 승부를 거는 기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화감독이 작화수정을 하나도 하지 않는 대신 원화 애니메이터는 최고 수준으로 불러오고 액션 작화에 시간을 더 많이 들여 유심히 지켜보면 액션 신 비중이 높고 액션 신의 연출과 작화 수준이 토미노 작품 중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편에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카나다 요시노리]], [[토미자와 카즈오]]가 있는 스튜디오 Z가 하청으로 참여한 에피소드, [[루팡 3세]]로 유명한 [[아오키 유조]]가 담당한 1화, [[사사카도 노부요시]]가 혼자 그린 마지막화의 경우는 매우 뛰어난 작화를 보여준다.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는 [[카나다 요시노리]]가 원화를 담당한 5화는 작화가 매우 뛰어난 걸작이라고 평했다. [[https://twitter.com/animesama/status/1377187312690339846|#]] 같은 애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격차가 크며 이런 작화가 좋은 에피소드는 작화 오타쿠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굉장히 높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직접 원화를 그린 장면도 꽤 있는데 [* [[야스다 아키라]]가 토미노 본인에게 이 작품엔 내가 그린 원화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 토미노의 콘티 그림체를 많이 접한 [[요시다 켄이치]]는 [[인간폭탄의 공포]]의 절규하는 캇페이는 토미노 그림일 것이라 주장했다. [[https://twitter.com/gallo44_yoshida/status/317011774937370624|출처]] 사실 토미노는 이른 나이에 연출로 전향해서 그렇지 원래는 원화 애니메이터였고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 원화를 그릴 수 있다. 초기 계획은 5대 합체 메카가 나올 예정이었으나 여러 [[어른의 사정]]이 겹쳐 3대 합체 메카로 바뀌었다. 메카닉 디자인의 원안은 히라야마 료지(후지와라 료지)가 작성했고, [[스튜디오 누에]]가 이를 수정하였다. 토이저널 [[1978년]] [[2월]]호에 의하면, [[슈퍼카]] 붐과 [[라디오]] 컨트롤 카 붐으로 인해 슈퍼카를 구입한 소비자들이 기존의 캐릭터 상품들을 구입했던 3~6세의 [[아동]]들이던 시장 환경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얼마 안된 작품이라고 한다. 점보트3는 1977년의 로봇 애니들이나 [[특촬]] 로봇 같이 다양한 경쟁 상품이 있던 환경에서 흑자를 기록했으며, 얼마 안돼 완구 공급의 과잉 현상이 발생해 점보트3의 라이벌 상품들은 속속 [[시장(경제)|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이 영향으로 인해 1978년, 1979년 2년간 일본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의 제작 편수가 크게 감소한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이 작품에서 나온 일본식 [[사무라이]] 메카닉, 무기 디자인은 기존의 서구식 양식이나 비현실적인 초[[과학]]적 양식들관 여러 면에서 대비된 형태로 디자인되었으며, 이후에 제작된 많은 로봇 애니들에서 일본식 디자인이 사용되게끔 영향을 끼쳤다. 사실 [[용자 라이딘]]도 토미노가 일본 양식을 도입한 슈퍼로봇이지만 최종 결과물이 별로 일본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식 슈퍼로봇은 이 작품을 시조로 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